솔로몬의 위증 - 미야베 미유키 책 봐

 미야베 미유키 저
 이영미 옮김

 1.사건  2.결의  3.법정 
 문학동네 펴냄
 2013년


  하기오 가즈미는 오늘도 여전히 한껏 꾸미고 고로 옆에 새침하게 앉아 있다-- 싶더니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코에 손가락을 댔다.
  너희 냄새나. 비난이 담긴 눈빛을 겐이치는 모른 척했다.
  에어컨이 없는 도서실은 창을 다 열어둬도 찜통같이 더웠다. 그러나 방금 후지노 료코의 관자놀이에서 흘러내린 땀 한 줄기는 더위 탓이 아닌 듯했다.
  후지노가 긴장해서 떨고 있다. 겐이치는 그것을 알아채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우리는 고발장 쓴 사람을 특정하는 데 필요한 증인을 확보했어."
  말투는 활기차고 씩씩했지만 료코는 웬일인지 변호인 측을 보려 하지 않았다.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 같아. 지금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중이야."
  완성되는 대로 판사에게 제출하겠다고 료코가 말을 이었다.
  "언제쯤 완성될까?" 판사가 질문했다.
  "이삼일 안에."
  "꽤 걸리네."
  료코는 호흡을 가다듬고 가즈히코와 겐니치를 바라보았다.
  "증인은 미야케 주리야. 노다는 알겠지만 그애는 아직 목소리가 안 나와."
  겐이치의 입이 딱 벌어졌다. 간바라 변호인은 축 늘어진 자세 그대로 료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서 진술조서를 쓰는 데 시간이 걸려. 한 번에 시간을 오래 내기도 힘들고."
  "건강은 어때?" 판사가 다시 물었다.
  "별로 안 좋아. 그래서 오자키 양호선생님도 부탁하셨는데."
  료코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다카기 선생에게 뺨을 맞았을 때도 이보다는 침착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이 증인을 보호하고 싶어. 무슨 뜻이냐 하면 --"
  가즈히코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개정 때까지 변호인 측은 접촉하지 말라는 건가?"
  평이하고 비난하는 기색 없이 담담한 말투였다.
  료코의 가느다란 목이 꿈틀했다. "그래."
  "일방적이군."
  판사 역시 비난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나도 미안한데, 그 조건이 아니면 미야케가 받아들이지 않겠대. 미야케의 부모님도."
  무슨 말을 하려는 판사를 가로막듯 료코는 "그래서"라고 힘주어 말하며 다시 간바라 변호인을 향해 말을 이었다.
  "진술조서가 완성되기 전에 그애의 증언 내용을 대략 설명할까 해. 그러면 변호인 측도 불리하진 않겠지? 개정 때까지 진위를 조사해볼 수도 있으니까."
  어때? 이노우에 판사가 가즈히코에게 물었다. 가즈히코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건 판사가 정할 사항이잖아? 우린 거기 따를게."
  판사가 안경을 밀어올렸다. "너무 선선한 거 아냐? 미야케는 중요 증인이야."
  "상관없어."
  가즈히코가 언제나처럼 악의 없는 미소를 머금고 판사를 바라보았다. 
  "후지노는 지금 고발장을 쓴 사람을 특정하는 데 필요한 증인이라고 말했어. 고발장을 쓴 사람이 아니라."
  료코의 관자놀이에서 또 땀이 흘러내렸다.
  "그럼 미야케가 고발장을 쓴 사람으로 지목한 건 누구야?"
  가즈히코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증인일 텐데."
  후지노 료코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오뚝한 코끝이 천장을 향했다.
  "아사이 마쓰코야."
  이노우에 판사의 눈이 은테 안경 너머에서 천천히 두 번 깜박거렸다.
  "아사이가 현장을 목격하고 고발장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혼자서는 벅차서 미야케에게 상의했다. 그래서 함께 고발장을 만들었다. 그런 얘기야."
  주도권은 아사이 마쓰코에게 있었고, 미야케 주리는 도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후지노!"
  겐이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얘기를 정말로 믿니?"
  "노다, 그만해." 판사가 제지했다. "여기서 할 말이 아니야."
  겐이치는 멀출 수 없었다. "그런 엉터리 소리를 진심으로 믿는 거냐고. 전부 아사이 탓으로 돌리다니, 해도 너무하는 거 아냐? 넌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목이 갑갑하다 싶어 보니 가즈히코가 셔츠 자락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느새 겐이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던 것이다.
  "앉아." 가즈히코가 부드럽게 말했다.
  고집스레 시선을 피하던 료코는 마침내 결심한 듯 턱을 당기고 겐이치를 바라보았다.
  "난 미야케를 믿어."
  셔츠 옷깃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버티고 섰던 겐이치의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자리에 앉자 바지에 땀이 배었는지 선뜩했다.
  "-- 죽은 사람은 말이 없어."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어. 겐이치는 중얼거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후지노 료코가 이런 말을 하다니. 후지노가 이렇게 나오다니.
  "그렇다면 이제 전면대결이군."
  남의 일인 양 침착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이노우에 판사가 말했다. "양쪽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진실을 밝혀낸다. 그러긴 이제 글렀어."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하긴, 재판이니까 그게 정상인가."
  판사가 그렇게 말하고 이마의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또 한 가지 요청이 있어."
  거의 억지스레 들릴 만큼 당찬 목소리로 료코가 말했다. "피고인이 미야케에게 접근 못 하게 해줘. 미야케는 오이데에게 보복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어. 우리도 그앨 지키겠지만 변호인 측도 오이데를 확실히 단속해줬으면 좋겠어."
  "야, 야마자키가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사사키 고로가 말을 더듬으며 끼어들었다.
  "응." 가즈히코가 대답했다. "알았어. 확실히 단속할게. 오이데 본인을 위해서기도 하니까."
  겐이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참았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
  "미안해."
  료코의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왔다.
  "그렇지만 이게 우리가 알아낸 진실이야."
 
진실이야.
  가자미 선생의 목소리가 겐이치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고발장을 쓴 여자애한테도 절실하게 필요할지 모르지. 누군가 전적으로 믿고 편들고 함께 싸워주는 경험이 --
  그래서 후지노가 그 역할을 떠맡은 걸까.
  그렇다면 미야케 주리는 왜 인정하지 않을까. 자기가 고발장을 썼다고 왜 말하지 않을까. 자기가 오이데 슌지를 고발했다고. 자기가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고.
  같은 거짓말이라도 그건 그나마 이해가 간다. 겐이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이해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을 방패로 삼으면서까지 미야케 주리는 대체 뭘 어쩌려는 걸까.
  우리가 알아낸 진실.
  "그렇다면."
  한숨을 섞어 중얼거리며 가즈히코가 의자를 빼고 일어섰다. 
  "그렇다면,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 진실을 깨부술 거야."
  단호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의욕이 넘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망설임이 없을 뿐.
  그러나 어딘가가 조금, 아픈 것 같았다.
  "가자."
  겐이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 간바라 변호인은 서둘러 도서실을 나섰다. 겐이치도 의자 모서리에 다리를 부딪혀가며 허겁지겁 뒤따라갔다.
  도서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운동장의 흙먼지를 머금은 후텁지근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무겁게 굳어 있는 다른 세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하기오 가즈미가 눈을 휙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좀 멋졌는데."
  깨부순다잖아.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과장되게 코를 움켜쥐었다.
  "그나저나, 쟤들 땀냄새 너무 심하더라!"
- 솔로몬의 위증 (2) 中


  도서관과 무인대여를 여러 번 오가며 겨우 읽었다. 이쯤이야 하며 전권을 빌렸다가 1권만 읽고 반납하고, 2권을 빌렸다가 반납일에 억지로 카페에 가서 공부하듯 읽었으며, 3권은 2권을 읽은 탄력으로 읽어냈다. 사실 두께에 구애받지 않고 잘 읽는 편인데 손에 잘 잡히지 않고 은근히 신경쓰이는 책이랄까. 
  학교를 다루는 소설의 시선은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학교 역시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라 긍정적인 면 뿐 아니라 부정적인 면도 갖고 있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어리지만 그 사회 안에서는 결코 어리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도 어른들이 만든 시스템을 깨부수지는 못한다. 대략 이렇다. 이 책도 유사한 틀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꽤 많은 등장인물이 있음에도 세세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낸 것은 인상적이었다. 사실 등장인물이 많아서 기록하면서 읽었다.
  제목이 왜 <솔로몬의 위증>이었을까. '솔로몬' 하면 연관되는 말은 '지혜'다. 아이의 진짜 어머니를 가려내는 솔로몬의 유명한 판결. 지혜로운 자의 위증이라... 소설 속에서 위증하는 아이는 한 명이지만, '위증'을 '거짓' 정도로 넓혀서 생각해 보면 사람들 각자가 가진 옳고 그름의 잣대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뚤어진 형태로 들이밀어질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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